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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정관진 제2군단/암정보

암·백혈병 환자들 "모유 달라" 아우성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08. 9. 27.

모유 '항암효과' 소문의 진실은


올해 2월 첫 딸을 낳은 이미영(28·가명)씨. 산후조리원에서 몸 조리를 하던 중 어떤 사람이 찾아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암 환자 가족이라고만 밝힌 50대 여성이 찾아와 "암에 걸린 남편을 위해 모유를 구해 먹였으면 하는데 혹시 남는 모유를 팔 수 있겠냐"고 한 것.

사정이 딱해 보이긴 했지만, 모유를 남에게 돈 받고 파는 것이 어쩐지 부담스럽고 아기에게도 미안해 거절했다. 이씨는 "현대판 젖 동냥에 놀랐다"고 말했다.

모유(母乳)의 가치가 '금값'이다. 아직 모유가 고가(高價)에 거래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모유를 구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은 "비싼 돈을 내고라도 구하고 싶다"고 한다.

모유를 구하기 힘든 상황 때문에 남는 모유를 기증 받아 운영되는 '모유은행'은 문을 닫을 지경이다. 모유은행은 모유가 남은 산모의 젖을 기증 받아 조숙아, 미숙아 등 모유가 필요한 아기들에게 공급하는 곳. 모유은행은 현재 5곳이 있으나, 이들 모유은행을 통한 기증자는 전국에서 200명 선에 그친다.

한편에선 모유에 항암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모유를 구하려는 암이나 난치병 환자들이 늘고 있다. 아이들의 식량인 모유가 비공식 치료제로 소문 나면서 귀하신 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유은행들, "기증자 없어 문 닫을 판"

모유은행은 출산 1년 이내의 건강한 산모가 아기에게 먹이고 남은 모유를 기증 받아 저온살균 처리해 엄마 젖을 먹지 못하는 아기에게 유상으로 공급하는 곳.

모유 수혜 대상자는 ▲출산 시 사망한 산모의 자녀 ▲조산아·미숙아 ▲엄마 건강 상의 이유로 젖을 먹을 수 없는 아이 ▲분유 과민성(알레르기) 영·유아 ▲수술 후 영양공급이 필요한 아이 ▲감염성 질환, 선천선 대사 이상 유아 등이다.

모유수유협회 김혜숙 회장은 "모유가 남아 집 냉장고에 쌓아두는 엄마들은 많은데, 이를 기증하는 사람이 너무 적어 5개 모유은행 모두 심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 모유은행에서 기증받은 모유를 저온 살균처리하는 모습. / 조선일보 DB

모유은행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증자가 적다는 이유 외에 이용 상의 불편함, 안전성에 대한 의문 등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산모가 모유를 기증하려면 혈액검사 결과를 모유은행에 제출해야 하는데, 비용이 24만원에 이른다. 질병 치료를 위한 혈액검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모유은행 제출용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전액 본인 부담이다. 임시 방편으로 출산 전 산부인과에서 받은 산전 검사 결과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일선 산부인과의 협조가 부족해 쉽지 않다.

기증 받은 모유의 관리에 대한 신뢰 확보도 관건이다. 기증자가 유축기로 젖을 짤 때 감염될 가능성이 있으며, 집 냉장고의 냉동실에 보관할 때도 다른 음식물과 섞여 있어 위생 문제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또 간염, 에이즈에 감염된 산모의 젖은 저온살균을 하지 않으면 수혜자에게 직접 전파될 가능성도 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박은영 모유은행장은 "모유의 변질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안전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온 살균 처리한 모유는 수혜자가 이용하기 직전까지 냉동상태를 유지한 후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변질 우려 없이 수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수혜자는 기증자로부터 무상으로 공급 받은 모유를 한 팩(180㏄)에 3000원 정도 받고 유상으로 판매하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모유는 식품이나 약처럼 판매 대상도 아니어서 법적으로도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유은행들은 모유를 수거해 멸균 처리하고 안전 검사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운영비와 인건비를 생각하면 오히려 적자하고 하소연한다.

모유, 정말 항암효과 있나?

모유를 먹이는 산모들이 많은 산후조리원 등을 중심으로 모유가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180㏄ 한 팩에 1~2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구매자는 말기 암, 백혈병 환자나 가족이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은 몇 년 전, 모유가 암세포를 괴사시킨다는 외국 연구결과가 국내에 소개되면서부터다. 전립선암에 걸린 미국 이론물리학자 하워드 코헨(60)박사가 4년여 동안 모유를 챙겨 마신 후 암이 호전됐다는 결과는 TV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유은행(CMMB)은 암 환자를 비롯한 성인에게도 모유를 공급한다.

모유의 암 치료 효과가 거론되는 이유는 그 곳에 든 락토페린(lactoferrin)이란 단백질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은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과 같은 세균의 감염이나 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말기 암 환자들은 통증이 심하고 식욕도 떨어지는데, 완전 식품인 모유가 통증을 줄여주고 영양소 공급을 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의료계에선 그러나 모유가 암을 호전시킨다는 결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노재경 교수는 "모유는 아기가 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입증되지 않은 일부 이야기를 암 환자들이 사실로 믿는 것은 안타깝다.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의사와 함께 과학적으로 입증된 정상적인 치료 방법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헬스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