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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좋은글[스크랩]

by 크리에이터 정관진 2008. 9. 27.





길 /  김용택 




나무 하다 건너다보면
버들피리 불며 보리밭을 매던 너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고
내가 가지 않으면 네가 오고

서로 생각하며 가다오다 만나면
문득 얼굴 들어 함께 웃던
꽃 피고 지며 눈 나리던 강길

우리 다시 오고 가지 못할 길같이
풀들이 우북하게 자라 길을 덮었어도
구월은 어김없고
강물은 반짝이며 흐르는구나.


보리풀 하다 보면 빨래하던 너

물 불은 강을 건너서
고운 맨발로도 오던 네가
신을 신고도 못 오는구나.

빤히 건너다보이는 너의 집 마당
붉은 고추를 널고 담던 너

마음이 가면
달 없는 밤 눈을 감고도 갔던 내가
환한 대낮 눈을 뜨고도 막히는구나.


자고 일어나보니
갈길이 막혀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아섰던 너와 나

내가 가지 않으면 네가 와야 하고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야만 할
수많은 가슴 아픈 세월이 흘렀어도

강물은 저 위로 시퍼렇고
딴길로 갈 수 없는 우리 사랑은

철책선 이 건너 저 건너
산그늘 강길에 내려
포탄에 찢기던 들국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너와 내가 오가던 발자국 따라
하얗게 피며
아무도 막지 못하는
마음이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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