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김용택
나무 하다 건너다보면
버들피리 불며 보리밭을 매던 너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고
내가 가지 않으면 네가 오고
서로 생각하며 가다오다 만나면
문득 얼굴 들어 함께 웃던
꽃 피고 지며 눈 나리던 강길
우리 다시 오고 가지 못할 길같이
풀들이 우북하게 자라 길을 덮었어도
구월은 어김없고
강물은 반짝이며 흐르는구나.
보리풀 하다 보면 빨래하던 너
물 불은 강을 건너서
고운 맨발로도 오던 네가
신을 신고도 못 오는구나.
빤히 건너다보이는 너의 집 마당
붉은 고추를 널고 담던 너
마음이 가면
달 없는 밤 눈을 감고도 갔던 내가
환한 대낮 눈을 뜨고도 막히는구나.
자고 일어나보니
갈길이 막혀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아섰던 너와 나
내가 가지 않으면 네가 와야 하고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야만 할
수많은 가슴 아픈 세월이 흘렀어도
강물은 저 위로 시퍼렇고
딴길로 갈 수 없는 우리 사랑은
철책선 이 건너 저 건너
산그늘 강길에 내려
포탄에 찢기던 들국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너와 내가 오가던 발자국 따라
하얗게 피며
아무도 막지 못하는
마음이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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