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민의 삶과 마음 설명서]
 
'당신 대 나'의 싸움을 '우리 대 패턴'의 싸움으로 바꾸​는 것이 부부 사이 원활한 대화의 시작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부부들이 진료실에 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신기하리만치 닮은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저녁 거실. 아내가 묻는다. "당신은 왜 말을 안 해?" 남편은 대답 대신 TV로 시선을 돌린다.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힌다. 닫힌 문 앞에서 아내는 더 크게 소리치거나, 혹은 주저앉는다.

이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걸까. 놀랍게도, 진료실에서 만나 보면 정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다. 두 사람 모두 관계를 간절히 지키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한 사람은 쫓고, 한 사람은 물러난다. 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일까.

쫓는 사람과 물러나는 사람
부부 치료에서 가장 흔히 관찰되는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한 사람은 다가가서 말하려 하고, 다른 사람은 입을 닫고 거리를 둔다. 앞의 예시처럼 아내가 쫓고 남편이 물러나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인 부부도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이 두 반응이 서로를 강화한다는 데 있다. 다가갈수록 상대는 숨이 막혀 더 물러나고, 물러날수록 상대는 애가 타서 더 쫓아간다. 마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한쪽이 도는 만큼 다른 쪽은 반대로 될 수밖에 없다. 부부 치료에서는 이를 '부정적 상호작용 고리(negative interaction cycle)'라고 부른다. 이름이 붙어 있을 만큼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당신 부부가 유별나서가 아니다. 세상 부부의 대다수가, 형태만 조금씩 다를 뿐 이 고리 안에서 힘겨워한다.

그리고 여기에 중요한 진실이 하나 있다. 이 고리에 갇힌 두 사람은, 둘 다 잘못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대사만 듣고, 자막은 읽지 못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남긴 우화가 있다. 추운 겨울,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 서로에게 몸을 붙인다. 그러나 가까워지는 순간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아파서 떨어지면 다시 추위가 밀려온다. 가까이 가면 찔리고, 멀어지면 춥고. 고슴도치들은 찔리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를 찾을 때까지, 이 서툰 반복을 계속한다.

부부의 겨울도 다르지 않다. 쫓는 사람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다가가는 것이고, 물러나는 사람은 찔리는 것이 두려워 거리를 두는 것이다. 가시도, 추위도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서로가 서로의 표면만 보고 있을 뿐이다.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것이 있다. 쫓는 사람의 날카로운 말과 화 밑에는 대개 이런 마음이 웅크리고 있다. '나를 좀 봐줘. 나 지금 혼자인 것 같아.' 화는 겉 감정일 뿐, 그 속 감정은 외로움이다. 물러나는 사람의 침묵 밑에도 다른 마음이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내가 부족하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 그게 무서워.' 냉담해 보이는 그 얼굴의 속 감정은, 사실 두려움이다.

나는 진료실에서 이것을 '마음의 자막'이라고 부른다. 화면에서 들리는 대사는 분명 화와 냉담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전혀 다른 자막이 흐르고 있다. '나 외로워.' '나 무서워.' 부부싸움이 끝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서로가 상대의 대사만 듣고 자막은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은 썼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화라는 몸짓도, 침묵이라는 몸짓도, 그 진짜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는 서로에게 상처로만 남는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다. 두 사람은 사실 같은 것을 원하고 있다. 서로에게 닿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정반대 방향의 몸짓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싸워야 할 상대는 배우자가 아니다
부부들은 대개 이렇게 믿으며 진료실에 온다. '상대만 바뀌면 우리는 괜찮아진다.' 그래서 상담 첫 시간은 종종 서로에 대한 성토로 채워진다. 저 사람이 먼저 말을 안 했다, 저 사람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누가 먼저였는지를 가리는 일에 온 힘을 쏟는 것이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싸움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도는 데에 '먼저'가 없듯, 쫓는 것과 물러나는 것도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다. 한쪽의 추궁이 다른 쪽의 침묵을 부르고, 그 침묵이 다시 더 큰 추궁을 부른다. 시작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다. 그리고 시작점이 없다는 것은, 범인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치료가 진행되면서 부부가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처음의 믿음과 다르다. 싸워야 할 상대는 배우자가 아니라, 두 사람을 가둔 그 반복이라는 것이다. '당신 대 나'의 싸움을 '우리 대 패턴'의 싸움으로 바꾸는 것. 관점이 이렇게 한 번 돌아서는 순간, 부부 사이의 회복은 절반쯤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해 보라. 어제까지 마주 서서 서로를 겨누던 두 사람이, 오늘은 나란히 서서 같은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겨눌 대상이 바뀌었을 뿐인데, 두 사람은 어느새 적이 아니라 한편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온기를 나누기 위하여
그렇다면 무엇부터 하면 될까. 거창한 대화법을 배우기 전에, 작은 것부터 권하고 싶다.

먼저, 그 반복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대단한 이름일 필요는 없다. 잔소리가 시작되면 한쪽이 입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부부라면, 그 익숙한 장면을 그저 '우리의 못된 패턴'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렇게 이름을 정해두면, 같은 장면이 또 시작될 때 둘 중 한 사람이 알아차리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여보, 우리 또 패턴이 시작됐어." 싸움의 한가운데서 이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두 사람은 잠시 소용돌이 밖으로 나와 그것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악순환은 눈에 띄게 힘을 잃는다.

쫓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대사 대신 자막을 직접 말해보라. "당신은 왜 말을 안 해?"가 아니라, "당신이 조용해지면, 나는 혼자가 되는 것 같아서 힘들어"라고. 화살 같던 말이 마음으로 바뀌는 순간, 상대가 등을 돌릴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물러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잠시 물러나는 것은 괜찮다. 다만 아무 말 없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지금은 머릿속이 하얘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피하는 게 아니야. 30분만 있다가 꼭 다시 이야기하자." 이 한 문장을 남기고 물러나는 것과 말없이 사라지는 것은, 남겨진 사람에게 하늘과 땅 차이다.

고슴도치들이 결국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가시를 뽑아서가 아니다. 찔리지 않는 거리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찾았기 때문이다. 모든 부부에게는 저마다의 겨울이 있지만, 함께 견디는 겨울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6/07/31/2026073103132.html
 

출처: 크리에이터정관진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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