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대부분 삶의 큰 어려움을 겪은 뒤에야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깨닫곤 한다.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직장 일이 감당하기 어려울 때, 가족에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문득 생각한다. ‘아, 그때가 행복한 거였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때, 평범했던 그 시간이 소중한 날들이었는데 왜 난 그걸 몰랐을까?’

특별하지 않았던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행복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국 한 그릇, 퇴근길에 잠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별일 없다는 가족들의 전화 한 통,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 오래된 친구의 짧은 안부. 그 순간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삶을 지탱해 준 중요한 장면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렇듯 행복은 너무 작고 조용해서 지나간 뒤에야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은 소소한 행복마저도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SNS 속 누군가는 멋진 여행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근사한 곳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있고 누군가는 성공을 자랑한다. 남들은 모두 특별하고 행복에 겨운 하루를 보내는 것 같은데 나만 별일 없이 똑같은 하루를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평범한 내 하루가 초라해 보이고 아무 일 없이 감사한 하루마저 실패한 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신건강의 관점에서 보면 늘 자극적이고 특별한 경험만을 좇는 삶은 오히려 마음을 지치게 만들 수 있다. 매 순간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감은 하루 종일 지속되는 상태라기보다 일상 속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감정에 가깝다. 행복은 더 큰 자극을 계속 찾아야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곁에 있는 작은 순간들을 알아차릴 때 선명해진다. 그렇기에 따뜻한 밥 한 끼, 가족과 나눈 정겨운 짧은 대화, 조용한 산책, 잠들기 전의 기분 좋은 졸림 같은 순간들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필요하다. 행복한 사람은 평범한 순간 속의 평안을 자주 발견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익숙한 길로 출근하고 늘 먹던 밥을 먹고 같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 너무 평범해서 의식하지 못하는 이런 반복이야말로 우리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든든한 기둥이다.

마음이 건강하다는 것은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작은 일에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힘든 감정이 찾아와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말한다. 힘든 날이 없는 인생은 없다.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불안하고 어떤 때는 지치고 외롭다. 그러나 그런 힘든 날도 내 삶의 일부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날이 찾아왔을 때 ‘왜 나는 불행할까?’라고 스스로와 환경을 비난하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인정하고 지나가게 하는 일이다. 정신건강에서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다. 

물론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측 가능한 하루, 큰 사건 없이 지나가는 시간, 특별히 아프지 않고 누군가와 다투지 않으며 보통의 생활을 이어가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노력과 도움, 관계의 지지가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도 중학교 때의 별것 아니던 한 장면이 아직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5월 경의 오후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공부방에서 이따금씩 창밖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건넌방에는 부모님이 계셨다. 특별한 일이 있던 날도 아니었고 큰 선물을 받았던 날도 아니었다. 그저 집 안이 조용했고 부모님은 곁에 계셨고 나는 내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참 편안하고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감정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행복은 대단한 일이 있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행복이었다. 아픈 사람도 없고 갈등도 없고 내일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간.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의 한 장면이었다.

곰돌이 푸의 말처럼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면서 그 안에 이미 들어 있는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 것. 그것이 마음을 지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방법이다. 어쩌면 행복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무사히 지나간 하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6/07/21/2026072102065.html
 

출처: 크리에이터정관진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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