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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웨딩 플래너’처럼 ‘웰다잉 플래너’ 있는 한국 사회… '웰다잉 국가책임제', 대통령이 나서야”
크리에이터 정관진
2025. 5. 27. 07:20
‘완화의료 권위자’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 인터뷰
“인간으로서 가장 존엄한 게 자기결정권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원하는 대로 죽을 수가 없습니다. 조력 존엄사를 위해 스위스에 가려는 국민이 3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건 정부가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저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입법 부작위에 의한 위헌’ 소지도 다분합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가다. 그는 지금까지 죽음과 관련된 굵직한 의료정책들을 만드는 데 기여해 왔다. 지난 2016년에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권리를 담은 ‘연명의료결정법’ 법제화에 앞장서 홍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요즘에는 ‘웰다잉(Well-Dying) 국가책임제’를 주장하고 있다. 80% 이상의 국민이 조력 존엄사 도입에 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당국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좁은’ 웰다잉도 못하는 한국 조력 존엄사는 웰다잉을 실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웰다잉’에는 좁은 의미와 넒은 의미가 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는 게 좁은 의미의 웰다잉이라면 넓은 의미의 웰다잉은 의료진이나 가족에 의한 마지막 순간이 아닌 스스로 삶을 완성하는 ‘품위 있는 죽음’이다.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삶을 정리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남기며, 후회 없이 삶을 마무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좁은 의미의 웰다잉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 가능 시점이 임종 과정에 한정되면서 임종 시점을 수일 앞당기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연명의료결정서를 작성해놔도 마찬가지다. 의료진 2인 이상이 ‘임종 과정’이라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명의료중단 결정과 이행 시기를 임종 과정에서 말기로 앞당기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국회서 발의됐지만 흐지부지됐다. ◇“대통령이 나서서 웰다잉 외쳐야” 이런 상태에서 사망자 수가 급증하면 불평등한 죽음이 쓰나미처럼 덮쳐 올 것이라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약 35만명이 사망했다. 태어난 사람은 23만여명이었다.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 현상은 지난 2019년부터 시작됐다. 기존의 예상보다 10년 정도 빠르게 나타났다. 2040년에는 한해 57만여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영호 교수는 “지금도 돌봄 부재로 인한 고독사, 간병 살인 등 존엄하지 못한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사망자 수가 급증하면 요양병원 등의 과부하가 심해져 죽음의 격차가 벌어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효율적인 선택지로 비쳐 남은 가족에게 극심한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은 카터 대통령 때 매년 11월을 호스피스의 달로 정하고 대통령이 말기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호스피스 케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선언을 한다”라며 “캐나다는 국회가 ‘모든 캐나다인의 권리’로 삶의 마지막 돌봄 정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선언하고, 국정과제로 채택해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명의료 안하면 인당 580만원 의료비 절감… “웰다잉에 투자” 품위 있는 죽음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선택이 자유롭게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말기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자유롭게 호스피스 병동이나 집으로 향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 사람이 장례, 유산 등의 절차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다. 윤 교수는 “웨딩 플래너처럼 웰다잉 플래너가 삶의 마지막을 도울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웰다잉을 위한 재정은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말기 환자가 호스피스를 선택하면 의료행위가 줄어들기 때문에 1인당 약 580만 원의 의료비가 절감된다는 심평원 보고서가 있다”라며 “이렇게 마련된 조 단위의 재원은 호스피스 확충과 웰다잉 플래너 기용 등 넓은 의미의 웰다잉에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할 때 호스피스·완화의료 확충을 위한 기금과 그것을 운영할 재단과 관련된 조항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호스피스는 정부의 지원 부족으로 의료기관들이 운영을 기피하면서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왜 한국인이 고통 없이 죽으려 스위스까지 가야 하나” 한편, 조력 존엄사 합법화는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력 존엄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죽음에 이르는 약물을 주입해 생을 마감하는 방법이다. 지난 2016년, 윤 교수가 국민 1000명에게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대해 물었을 때 찬성하는 비율은 41.4%에 그쳤다. 그러나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하는 비율은 82.0%에 달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연명의료의 무의미함과 가족의 부담,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 의사인 그 역시 과거에는 조력 존엄사에 반대했다.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이 먼저고 조력 존엄사는 나중에’라고 여겼지만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조력 존엄사를 하려고 스위스까지 가는 국민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왜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고통 없이 죽기 위해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거기까지 가야 하나”라며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합리적이고 자발적이고 진정성 있는 선택은, 설사 그게 죽음이라도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계와 의료계의 반대에 대해서는 구성원의 의견을 조사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톨릭 신자라도, 의사라도 구성원들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라며 “공식 입장만 내세워 여론을 왜곡할 게 아니라 직접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타살 등의 부작용은 장치를 만들어 막으면 된다”라며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윤영호 교수는…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이자 완화의료 분야 권위자다. 스스로를 ‘삶과 죽음에 대한 신념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교수이자 의사’라 말한다. 1989년, 말기 암 환자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암 환자와 가족의 건강과 삶의 질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을 돕고자 국립암센터에 ‘삶의질향상연구과’를 신설했으며,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설립위원으로 활약했다. ‘연명의료결정법’ 법제화에 앞장선 공로로 2016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연구와 저술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웰다잉, 말기 환자, 호스피스·완화의료 등에 관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50편, 국내 학술지에 15편 발표했다. 학교와 병원을 오가는 바쁜 나날에도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 ‘삶의 의미를 잃기 전에’ 등의 책을 저술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5/05/26/2025052601502.html |
출처: 크리에이터 정관진 제1군단 원문보기 글쓴이: 니르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