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찌 떠나지 않을 수 있으리

 

자전거는 내 힘만으로 움직이는 원시적 이동수단이다. 화석연료를 들이켜지 않으니 좁은 이 땅과 공기를 더럽히는 배설물이 없고, 접근성이 쉬워 어디든 갈 수 있다. 속도가 느려 아름다운 강토의 진면목과 시골의 소박한 정이 눈으로, 또 가슴으로 들어온다.

 

필자는 세계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이래 22개국 약 5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수많은 길 중에서도 강변이나 해안도로를 달릴 땐 시계가 트여 경치도 좋고 피로감이 덜하다.

 

또 길을 잃어 헤맬 염려가 없고, 일정 거리마다 캠핑장 등 편의시설이 있어 숙식을 해결하기도 좋다.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인근 4대강 자전거길을 라이더들이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다. 사진 출처: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올 연말, 4대강살리기 사업이 완공되면 물길을 따라 멋진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도로가 생긴다. 스페인의 ‘카미노데 산티아고’ 같은 명품 관광길을 우리라고 만들지 못하란
법 없다. 그간 한국을 찾은 외국 라이더들에게 내가 추천했던 자전거 루트는 동해안 7번국도와 제주도 올레길이 전부였지만, 4대강 주변에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면 추천할
곳이 더 많아질 거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이 가을에 미리 떠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어 ‘애마’의 ‘건각’에 바람을 가득 채웠다. 배낭에 지도와 카메라, 비상식량을 넣으니 마음은 벌써 쭉 뻗은 강변길을 내쳐 달린다.

 

 

최고의 자전거길, 한강

 

 

 

서울 한강 수계를 중심으로 국내 최고의 자전거 도로망이 조성돼 있다. 답답한 도심을 벗어난 강변 둔치에 조성돼 통근·레저는 물론 라이딩 코스로도 그만이다. 한강 둔치에 와 본 외국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 한복판에 이만한 수변 시설과 자전거 도로망을 갖춰 놓은 곳이 또 있을까.

 

이제는 영역을 더 넓혀 북쪽으로는 화천, 남쪽으로는 충주호에 이르기까지 중간중간 수변공원이 조성되고 자전거길이 이어진다. 팔당대교를 넘어 달리니 경기도 양평군의 두물머리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 ‘한물’과 태백 검룡소에서 샘솟은 남한강 ‘한물’이 만나 ‘두물’이 된다. 풍광이 수려해 수많은 영화와 CF의 무대가 됐다.

 

강바람을 맞으며 통기타 치던 옛 열차 속의 풍경을 그리며 페달을 밟았다. 양평대교 부근의 억새림을 지나니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우주정거장 같은 이포보(洑)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알고 보니 여주의 군조(郡鳥)인 백로를 형상화한 가동댐다. 그리고 7개의 거대한 백로 알 속에는 수문을 들어 올리는 리프트가 있다고 한다.

 

부근 당남지구의 잘 가꾸어진 초지를 지나 여주 신륵로 향했다. 많은 절이 산과 계곡에 있지만, 강가에 자리한 명찰(名刹)은 이 절이 한국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충청도로 들어와 마지막으로 두 바퀴가 찾은 곳은 두 얼굴의 탄금대. 이곳에는 신라의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남한강의 절승(絶勝)에 매료되어 둥지를 틀고 제자들에게 가무음곡(歌舞音曲)을 가르치며 가야금을 뜯으니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락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마치 유럽의 낭만적인 음악 도시 잘츠부르크를 연상케 한다.

 

 

금강 백제 왕국의 영화 속으로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다. 예로부터 비단결같이 아름답다 하여 비단강이라 불린 금강이 신음을 내며 흘렀다. 자연은 제 기능을 상실하는 것보다 회복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수초가 없어지니 벌레가 죽고, 벌레가 없으니 새들도 외면한 강.

이 금강이 다시 맑아지고 있다, 서서히.

 

<금강 하류, 충남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

 

자전거는 국내 최대의 철새 도래지라는 금강 하구둑을 달렸다. 시야가 탁 트인 금강정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휴식을 취했다. 둑에 핀 코스모스의 환송을 받으며 충남 서천군 신성리 갈대밭으로 옮겨갔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뚝방에 올라서니 끝없이 펼쳐진 푸른 갈대밭은 차라리 ‘갈대의 밀림’이라 해야 어울릴 듯하다.

 

순천만 갈대밭과 쌍벽을 이루는 이곳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졌다. 바람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는 갈대,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가을에 다시 오고 싶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백제의 고도 부여로 떠났다.

 

백마강 구드래 나루터. 일본에선 백제를 ‘구다라’로 읽는다. 과거 여기에서 선적된 문물은 비단강을 따라 군산 앞바다를 거쳐 현해탄을 넘어 일본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는 사이 구드래는 자연스레 백제를 의미하는 구다라로 변했다. 추론을 해봤다. 일본에 들어간 수출품은 최고 대우를 받았다. 말하자면 메이커나 명품 브랜드인 셈이다. 속설이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구다라나이’(백제가 아니다. 즉 백제 것이 아닌 것은 시시하다, 하찮다)라는 일본말에서 보듯, 백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특별한 태도를 느낄 수있다.

 

<충남 공주시 신관지구의 야경. 사진 출처: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그 옛날 찬란했던 백제 왕국의 영화를 머릿속에 그리며 자전거는 새로운 도심형 수변 공간을 만드는 금남보와 세종 신도시를 지났다. 하루해가 땅거미를 늘어뜨리며 넘어갈 무렵 애마는 금강 풍경의 압권인 연기군 합강리에 이르렀다. 미호천과 금강이 만나 용틀임을 하는 곳이다. 먼저 인근 합호서원에 들러 조선시대 주자학의 선구자 안향(安珦) 선생의 자취를 더듬었다. 역시 충청은 교육 도시의 원류다.


합강리에서 이장을 했던 주민 안재영 씨를 만났다. 66년간 살아온 토박이답게 지역의 과거와 미래를 설명하는 말에 힘이 넘쳤다.


“진작 이렇게 정비 작업을 했어야지요. 주민들 대부분이 하루빨리 공사가 끝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어요.”

 

그와 헤어지고 합강정에 올랐다.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진 강을 응시하며 저무는 금강과 작별을 고했다.

 

 

영산강 음풍농월의 본고장

 

영산강은 비옥한 나주평야를 촉촉이 적셔주는 수원(水源)이다. 여기에 극락강·황룡강 등 크고 작은 샛강 1,300여 개가 굽이쳐 만나는 곳마다 절경을 만들어냈다. 유역에는 과거 900개가 넘는 정자에서 백호 임제, 송강 정철 등 호남의 문인, 풍류 가객들이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좋은 시절을 구가했다.


풍경을 만끽하며 페달을 밟다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구조물에 깜짝 놀랐다. 쌀알을 형상화한 승촌보였다. 익어가는 벼와 큼직한 보는 빼어난 하모니를 이룬다. 4대강에 건설되는 16개 보 중 지역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논두렁길을 따라 이리 구불 저리 구불 20여 분을 달리니 야트막한 노평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호가정이 나왔다. 호가(浩歌)는 흥취를 큰소리로 노래한다는 말이다. 아주 먼 옛날, 여기서 나주 노래자랑이라도 열렸을지 모를 일이다.


“웸메, 다릿 씸이 조은 개비여!”

 

자전거와 함께 정자에 들어서니 선착객 한 분이 말을 건넸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번 여정을 설명했다. 그들은 광주에 사는 일흔세 살 동갑 친구들로, 자전거로 건강을 챙기고 우정도 다지고 있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리더 박영길 씨는 “어서 빨리 목포까지 자전거길이 연결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그때 다시 내려와 함께 라이딩을 하잔다. 인근 석관정에 오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현판 문자 그대로 ‘영산강 제일경’이다.

 

마침 황포돛배까지 유유자적 지나가니,

 

“긔 더욱 반갑고야!”

 

<전남 무안의 회산백련지. 연잎을 헤치며 보트 놀이를 즐긴다.>


자전거는 몽탄대교를 건너 무안을 지나 목포를 향해 달렸다. 둑길 옆엔 국내 최대 연밭인 회산백련지가 있다. 여름이면 무려 33만제곱미터(약 10만 평)가 넘는 저수지가 연잎으로 가득 메워져 대장관을 연출한다. 영산강은 무수한 연꽃으로 환생하고 또 환생한다.

 

 

낙동강 흐르는 듯 멈춘 듯 갈대숲의 절경

압록강·두만강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 대구에서 금호강, 합천에서 황강, 진주의 남강, 밀양의 밀양강과 합류해 부산 다대포에서 바다와 만난다. 유장한 흐름 끝에 하구에 내려놓은 퇴적물은 삼각주를 만들며 비옥한 김해평야를 형성했다. 흐르는 듯 멈춘 듯 잔잔한 강 옆에는 을숙도에 이르기까지 자전거 도로가 잘 단장돼 있다.


‘새[乙]가 많고 물이 맑은[淑] 섬’이란 뜻의 을숙도. 오랫동안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로 각광받았다. 130종의 조류가 확인됐다니,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많단다. 수질 오염과 하구의 무분별한 개발로 옛 명성이 무색해졌지만, 4대4대강살리기 사업과 맞물린 정부의 계속된 노력으로 지금은 서서히 제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낙동강 수변을 따라 을숙도로 가는 자전거길에서 한 라이더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을숙도 남단 에코센터에서 출발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다. 한창 영글고 익어야 할 과일과 곡식의 수확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걱정의 소리가 높다. 비는 자전거 여행에서 역시 극복하기 힘든 자연환경이다. 하지만 이 어려움도 여정의 일부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는 잘 조성된 강변길을 따라 양산의 오봉산 임경대를 향해 달린다. 경남 일대에서 낙동강의 조망이 가장 빼어나다는 곳이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처녀뱃사공, 이 한마디가 주는 상상력은 무한하다. 처녀라는 단어만으로도 싱그러운 감흥이 드는데, 게다가 뱃사공이라니.


6·25전쟁 직후 함안에서 공연을 마친 유랑극단 윤부길(윤항기·윤복희 부친) 단장이 악양 나루를 건널 때 두 처녀가 번갈아 노를 젓고 있었다. 사연을 물은즉, 입대 후 소식이 끊긴 오빠(박기준·후에 전사로 판명됨)를 대신해 오빠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노를 젓는다 하지 않는가.


애절한 사연에 감동한 윤 단장이 즉시 노랫말을 짓고 한복남이 곡을 붙여, 황정자의 노래로 1959년 <처녀뱃사공>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노래의 무대가 된 악양 나루터에는 다리가 놓여 나룻배는 사라졌고 두 처녀는 부산으로 시집가 잘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카 박길석 씨에 따르면 고모인 ‘두 처녀’는 생전에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국민의 가슴속에 늘 처녀로 불리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마치 우리의 영원한 누나 유관순처럼.

 

<4대강 자전거길은 라이더들에겐 꿈같은 현실이다. 완공 후 질주할 그날을
기다리는 자전거 동호인들.>

 

노래비 인근에 있는 악양루에 올라 저 멀리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을 내려다보니 지나온 여정들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라이더의 꿈도 흐르는 저 강물에 힘차게 띄워 본다. 4대강 따라 자전거길이 완공되어 질주할 그날을 기다리며….

 

 

<이 포스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2011 추석 고향가는 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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